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기러기 엄마로 살았던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건강에 있어서만큼은 여전히 놓치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성조숙증 판정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나는 일란성 쌍둥이 딸을 키우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게 똑같은 아이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셋째, 즉 일란성 쌍둥이 중 한 명이 성조숙증 판정을 받았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왜 둘 중 한 명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미국에 있을 때 이미 있었던 신호들
사실 미국에 있을 때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느꼈던 건 머리에서 나는 냄새였다. 셋째 아이가 운동을 많이 하고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다. 덥고 습한 캘리포니아 날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머리를 감기고 청결에 신경을 썼지만, 어느 순간 또 냄새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 아이가 부쩍 키가 크고, 감정 기복도 심해졌다. 하지만 "사춘기가 좀 빠른가 보다"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미국 현지 엄마들조차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냥 빨리 크는 거지 병은 아니야."
만약 그때 미국에서 성조숙증 검사를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솔직히 말하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이 검사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 기본 검사만 해도 수백 달러가 들고, 치료는 수천 달러가 넘는다. 민간 보험이 있어도 성조숙증 치료는 보장 범위가 제한적이고 까다롭다.
대부분의 미국 부모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선택을 한다. 치료를 받는 게 사치라고 여길 정도로 부담이 크다.
한국에 돌아와서 발견한 진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들을 데리고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둘째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지만, 셋째가 문제였다. 성조숙증이 진행 중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이었다.
병원에서 아이의 왼쪽 손뼈를 찍어 뼈 나이 검사를 하고, 호르몬 수치 검사를 진행했다. 이미 뼈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이대로 두면 키가 자라지 않고 성장판이 일찍 닫힐 위험이 크다고 했다.
다행히도 아이가 만 7세라서 한국에서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성조숙증 치료는 매달 성선자극호르몬억제제 주사를 맞아야 한다. 병원에서 설명한 바로는 보통 2년 정도 치료가 필요하며, 그 후 아이 상태를 보면서 조정한다고 했다.
미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솔직히 미국에서 이런 진단을 받았다면, 치료 자체를 포기했을 수도 있다. 매달 몇 백만 원이 드는 치료비를 부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은 민간 보험이 있어도 이런 부분은 별도의 플랜이 필요하거나, 본인이 대부분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에서는 성조숙증을 병으로 인식하기보다 '그냥 사춘기가 빨리 오는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치료를 권유받기보다, 그저 "크는 속도가 빠른 거야"라고 말해주는 경우가 더 많다.
일란성 쌍둥이인데 왜 차이가 날까?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일란성 쌍둥이인데 왜 한 명만 성조숙증이에요?" 나도 처음엔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유전자가 같더라도 호르몬 분비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생활 패턴, 스트레스, 체중, 심지어 감정 상태까지 영향을 준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 역시 똑같이 키웠다고 생각했지만, 둘 중 한 아이가 더 예민했고, 더 활동량이 많았고, 더 빨리 살이 찐 시기가 있었다. 이런 미세한 차이가 결국 호르몬 변화에 영향을 준 것이다.
성조숙증 신호, 이렇게 알아차릴 수 있다
내가 경험으로 느낀 성조숙증 초기 신호는 이렇다.
- 머리 냄새, 체취 변화 - 갑자기 땀 냄새나 머리 냄새가 심해진다. 매일 머리를 감아줘도 금방 냄새가 다시 난다.
- 급성장 - 또래보다 키가 부쩍 크고, 성장 속도가 빨라진다.
- 감정 기복 - 예민해지고, 감정이 불안정해진다.
- 가슴 멍울, 생식기 변화 - 여자아이는 가슴 부위가 발달하거나 멍울이 생긴다. 남자아이는 고환 크기가 커지거나 음모가 자라기 시작한다.
이런 변화가 보이면 꼭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뼈 나이 검사와 호르몬 검사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의 건강보험,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한국은 만 8세 미만 성조숙증 판정을 받으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덕분에 우리 아이도 치료비의 90% 가까이를 지원받아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월 5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매달 주사를 맞고 있고,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만약 8세 이후였다면 전액 자비로 치료해야 했을 텐데, 정말 아슬아슬하게 타이밍이 맞았다.
부모의 관찰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는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잘 인지하지 못한다. 또 사춘기가 빠르게 오는 걸 아이가 굳이 부모에게 말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나는 머리 냄새가 강해졌을 때 가볍게 넘겼다. 그리고 감정이 불안정할 때도 그냥 성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민감하게 체크하고 있다.
마무리하며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우리 가족에게 정말 큰 전환점이었다. 미국에 계속 있었다면, 아이의 성장이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성조숙증은 빠르게 발견하고 적절하게 치료하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가 신호를 놓치면, 아이는 조기 사춘기와 함께 성장이 멈추고 더 큰 심리적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아이의 작은 변화를 그냥 넘기지 말고, 한 번쯤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보길 추천한다. 아이는 어른보다 빠르게 자란다.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